스토리
유독 달빛이 어슴푸레하던 그믐의 밤이었다.
“자네들과 이렇게 한 자리에 있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그래. 아마 천년은 더 되었겠지? 각자가 수호하는 방위를 쉽게 벗어나지는 못하니 말이야…”
청룡의 말에 백호, 주작, 현무는 모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 오늘 그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우리 모두를 부른 것인가?”
“맞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래 중간계에 머물렀어. 하루라도 빨리 신계로 올라가지 않고서는 우리 또한 필멸자와 다름없이 한줌의 재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비늘은 하나둘 떨어지고 있지. 주작, 그대는 어떠한가? 아름다웠던 붉은 깃털이 이제는 그때의 찬란한 빛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지 아니한가? 백호여, 금방이라도 대지를 쪼갤 것만 같던 그대의 어금니도 이제는 상당히 무더졌네. 현무, 그대의 등껍질 또한 마찬가지야. 칠흑같은 어두움으로 세상의 모든 재앙을 막아줄 것 같만 같았던 자네가 이렇게 노쇠한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편치는 않구려…”
청룡의 말이 끝나고 잠시의 침묵이 이어졌다.
“별다른 말들이 없는 것을 보니 자네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군. 그래서 말이야 저번의 회의가 끝나고 내가 생각한 한 가지 방도가 있다네. 한번 들어보겠는가?”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청룡의 설명은 이어졌고, 설명이 끝날 무렵 백호, 주작, 현무의 다른 사방신 또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지난 뒤 구미호, 야마타노오로치, 드래곤, 크라켄 등 동서양의 신화와 전설 속 수많은 신수들이 사방신의 명을 받아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각자의 영역을 지키던 자네들을 이렇게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네. 우리 사방신들은 이제 중간계를 떠나 신계로 올라가고자 한다네. 하지만 갑작스럽게 우리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누가 동서남북을 수호하겠나? 그래서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방신들은 우리들의 후계자로서 동서남북을 수호할 차기 사방신을 선발하고자 한다네.”
청룡의 폭탄과도 같은 선언이 마치자 장내는 수많은 신수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찼다.
“조용! 아직 청룡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고맙네 백호.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자면 이러하네. 순서대로 나, 백호, 주작, 현무가 각자 사방신에 적합한 자를 뽑기 위한 시험을 시작할 것이야. 그리고 네 가지 시험을 모두 통과한 가장 우수한 네 마리의 신수가 동서남북을 수호할 차기 사방신이 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지. 첫 시험 전까지 휴식을 취하고 싶은 이는 쉬거나, 수련을 하고 싶은 이는 몸과 마음을 정진하게나. 모쪼록 다들 무운을 빌지.”
사방신들은 단상에서 내려와 각자의 방위로 돌아갔지만, 신수들은 그들이 떠난 자리를 지키며 청룡이 던진 화두를 곱씹었다.
누가 사방신의 권좌에 오를것인가!